<연중 제25주간 토요일>(9.28)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루카9,44)
'부활의 대전제인 죽음!'
오늘 복음(루카9,43ㄴ-45)은 '수난과 부활을 두 번째로 예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성과 신성을 함께 갖추신 분, 곧 사람이시면서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여러 곳에서 드러났는데, 먼저 '많은 기적을 통해서', 그리고 '타볼산에서의 거룩한 변모 때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성이 드러날 때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 오신 궁극적인 목적을 드러내는 '마지막 표지인 십자가', 곧 '죽어야 부활할 수 있다는 결정적 표지인 십자가 사건'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결정적 표지인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세 번에 걸쳐서 제자들에게 예고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복음 전체를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이들이나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죽어야 부활한다는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수난과 죽음 없는 영광과 부활을 원했습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요?
희생과 봉사 없는 구원, 고통 없는 기쁨, 죽음 없는 부활을 바라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한번 각자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곧 수난과 죽음과 부활은 내가 죽어야 살 수 있다는 '믿음의 본질'입니다.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12,7-8)
"아버지, 이민홍 베드로의 영혼을 아버지 품 안에 받아 주소서."
(~ 2열왕7,10)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