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024.02.11 07:08

연중 제6주일

조회 수 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연중 제6주일> -세계 병자의 날- 2024.2.11.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1,41b)

 

'나의 나병!'

 

오늘 복음(마르1,40-45)'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1독서인 레위기의 말씀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나병과 같은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져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었던 '소외병 환자'입니다.

하지만 가엾은 마음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병 환자를 고쳐주십니다.

 

나병(한센병)몸의 지체가 문드러지는 문둥병입니다.

특히 눈과 코와 입과 두 손과 두 발과 같은 말초신경계에 두드러진 증세가 나타나는 병입니다.

 

육체의 나병예수님의 치유기적을 바라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도 나병 환자는 아닐까?

마음이 문드러진 그런 나병환자,

그래서 종종 헛소리를 하고, 헛것을 보고 듣고, 헛된 행동을 하는 나병 환자는 아닐까?

 

'211'인 오늘은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211'1858 프랑스 루르드에서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께서 가난한 시골 소녀였던 베르나데트(벨라뎃다)에게 첫 발현하신 날입니다. 이후 여러 차례 발현하셨는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92년부터 해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211'세계 병자의 날'로 제정하셨습니다.

 

많은 병자들과 병자들을 위해 희생 봉사하는 천사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2024년 제32차 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를 꼭 읽어보실 것을 권고합니다.

 

오늘 제2독서(1코린10,31-11,1)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10,31-32)

 

주님의 도우심이신 성령의 힘이 더해져서

많은 병자들이 치유되고, 나의 나병도 치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코린3,18)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첨부 : 2024년 제32차 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

(아래)

 

<2024년 제32차 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 2024. 2.11.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

관계의 치유를 통한 아픈 이들의 치유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창세 2,18 참조). 한처음부터,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친교를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삼위일체의 모습을 반영하는 우리 삶은 관계와 우정과 주고받는 사랑의 연결망을 통하여 충만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바로 이 친교의 계획이 인간의 마음 깊이 뿌리내려 있기에, 우리는 버림받음과 고독에 대한 체험을 무언가 두렵고 고통스럽고 심지어 비인간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이따금 심각한 질병에 걸려 취약하고 불확실하며 불안한 시기에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코로나바이러스19 감염증의 세계적 확산 시기에 몹시 외로웠던 모든 이를 생각합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방문객을 맞이할 수 없었던 환자들뿐만 아니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격리 병동에 갇혀 지낸 많은 간호사, 의사, 지원 인력이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의료진의 도움을 받지만 가족과 멀리 떨어져 홀로 임종의 시간을 맞아야 했던 모든 사람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또한 전쟁과 그 비참한 결과로 도움도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남겨진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과 괴로움과 고립감에 함께합니다.

전쟁은 가장 끔찍한 사회 병폐이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희생을 치르게 합니다.

 

또한 평화와 더 많은 자원을 누리는 나라에서조차, 노년과 질병의 시기를 외로움 속에서 그리고 때로는 버림받는 상황으로도 경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이 암울한 현실은 주로 개인주의 문화, 곧 온갖 대가를 치르고 얻는 생산성을 찬양하고, 효율성의 신화를 조장하며, 개개인이 더 이상 보조를 맞출 힘이 없을 때에는 무관심해지고 냉혹해지기까지 하는 개인주의 문화의 결과입니다. 그러고 나면 개인주의 문화는 버리는 문화가 됩니다. 버리는 문화에서 사람은 존경하고 보호할 우선 가치로 더 이상 여겨지지 않습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 장애인, 태아처럼 아직 쓸모없는 존재’, 노인처럼 더 이상 쓸모없는존재라면 더욱 그러합니다(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18).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간의 존엄성과 필요에 중점을 두지 않는 어떤 정치적 결정을 이끌어 냅니다. 이러한 정치적 결정은 모든 사람이 건강에 대한 기본권과 의료 혜택의 기회를 누리도록 보장하는 데에 필요한 정책과 자원을 늘 장려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의료 혜택을 단지 의사와 환자와 가족 구성원 사이에 치료의 연대를 수반하지 않는 서비스 제공으로 축소시켜 버리는 것도 취약한 이들이 버림받고 고립되는 데에 일조합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다시 한번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초기에 이 말씀을 하시어 인류를 위한 당신 계획의 심오한 의미를 우리에게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서서히 스며들어 의심과 균열과 분열에 이어 결국 고립을 야기하고 마는 죄의 치명적인 상처도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죄는 사람과 그의 모든 관계를, 곧 사람이 하느님과,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과, 피조물과 맺는 모든 관계를 공격합니다. 그러한 고립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죄는 사랑의 기쁨을 앗아가고 우리가 삶의 모든 중요한 여정에서 혼자라는 숨 막히는 느낌을 체험하게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모든 질병에 필요한 돌봄의 첫 번째 형태는 함께 아파하고 사랑으로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병자를 돌본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의 돌봄을 의미합니다. 그가 하느님과, 다른 이들 곧 가족 구성원과 친구와 의료인과, 피조물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맺는 모든 관계를 돌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가능합니까? 그렇습니다.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이 일이 분명히 이루어지게 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표상을 바라봅시다(루카 10,25-37 참조). 걸음을 늦추어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그의 역량을, 고통받고 있는 형제의 상처를 돌보는 그의 온유한 사랑을 살펴봅시다.

 

삶의 중심이 되는 이 진리를 기억합시다. 이는 누군가 우리를 환영해 주었기에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고 사랑을 위하여 우리가 창조되었으며 친교와 형제애로 부름받았다는 진리입니다. 우리 삶의 이러한 측면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질병에 걸리고 허약할 때 우리를 지탱해 줍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하여 우리가 다 함께 채택해야 하는 첫 번째 치료법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일시적이든 만성적이든 질병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친밀감과 온유함에 대한 여러분의 갈망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이를 숨기지 말고, 여러분이 다른 이들의 짐이 된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마십시오.

병자들의 상태는 우리 모두에게, 정신없이 바쁜 삶의 속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라고 촉구합니다.

 

급변하는 이 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특히 예수님의 연민 가득한 눈길을 닮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고통받고 외로운 이들, 소외되고 버림받았을 이들을 돌봅시다.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기도 안에서, 특히 성찬례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고독과 고립의 상처를 치유합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개인주의, 무관심, 버리는 문화에 맞서 싸우고 온유와 연민의 문화를 증진하는 데에 힘을 모으게 되는 것입니다.

 

병든 이들, 취약한 이들, 가난한 이들은 교회의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의 인간적 관심과 사목적 염려의 중심에도 그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절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병자의 치유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전구해 주시고 우리가 친밀감과 형제적 관계의 장인이 되게 도와주시도록 성모님께 우리 자신을 맡겨 드립시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4110, 프란치스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44 사순 제2주간 수요일 강배훈(비오) 2024.02.28 8
743 사순 제2주간 화요일 강배훈(비오) 2024.02.27 5
742 사순 제2주간 월요일 강배훈(비오) 2024.02.26 3
741 사순 제2주일 강배훈(비오) 2024.02.25 7
740 사순 제1주간 토요일 강배훈(비오) 2024.02.24 9
739 사순 제1주간 금요일 강배훈(비오) 2024.02.23 3
738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강배훈(비오) 2024.02.22 7
737 사준 제1주간 수요일 강배훈(비오) 2024.02.21 1
736 사순 제1주간 화요일 강배훈(비오) 2024.02.20 2
735 사순 제1주간 월요일 강배훈(비오) 2024.02.19 2
734 사순 제1주일 강배훈(비오) 2024.02.18 15
733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강배훈(비오) 2024.02.17 5
732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강배훈(비오) 2024.02.16 14
731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강배훈(비오) 2024.02.15 0
730 재의 수요일 강배훈(비오) 2024.02.14 14
729 연중 제6주간 화요일 강배훈(비오) 2024.02.13 7
728 연중 제6주간 월요일 강배훈(비오) 2024.02.12 10
» 연중 제6주일 강배훈(비오) 2024.02.11 5
726 강배훈(비오) 2024.02.10 18
725 연중 제5주간 금요일 강배훈(비오) 2024.02.09 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1 Next
/ 41
미 사 시 간
06:30  
  19:30
10:00  
  19:30
10:00  
06:30

1주
10:00
주 일
18:30
주일 10:30
3주 쌍백 14:00
3주 삼가 16:00
2,4주 야로 16:00

예비신자 교리반 안내
구 분 요 일 시 간 
성 인 주 일 09:30

50236 합천군 합천읍 충효로3길 10 합천성당
전화 : 055-931-1283, 팩 스 : 055-931-1294

Copyright (C) 2020 Diocese of Masan. All rights reserved.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