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3,22)
'다시 태어남!'
오늘 복음(루카3,15-16.21-22)은 '세례자 요한의 설교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님세례축일인 오늘로 '성탄시기'를 마치고, 내일부터는 예수님 공생활의 신비인 땀의 신비를 더 깊이 묵상하는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세례 사건은 공관복음에서 함께 전해지고 있는데, 마태오복음(3,13-17)과 마르코복음(1,9-11)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신 사실을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지만, 오늘 복음인 루카복음(3,21-22)은 세례받으신 사실을 간단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3,21-22)
예수님의 세례 사건은 '우리 세례의 예표'입니다. '우리의 세례를 미리 보여준 사건'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이 드러난 사건', 곧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침수 세례'입니다.
세례받으시기 위해서 요르단 강 물에 잠기셨다가 물에서 올라오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물의 잠김'은 '그분의 죽음'을, '물에서 올라오심'은 '그분의 부활'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세례는 '씻김의 예식'입니다.
세례는 '다시 태어남의 예식'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미 받은 우리의 세례를 기억합시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답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 한번 되돌아봅시다!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자녀답게 예수님과 함께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는지?
구체적인 이슈나 사건 앞에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는지?
한번 되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번에 마산교구 서품식과 새 사제들 첫 미사에 함께하면서, 21년 전 저의 서품 때의 모습을 되돌아보았고, 그리스도의 사제로 잘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제의 약함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신자들의 약함 때문에도 그렇고, 하느님과 전혀 다르게 살아가려는 이들 때문에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제2의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사제들, 예수님을 닮으려고,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내려고 애쓰는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많은 사제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그리스도의 사제들에게 서슴없이 자신의 불만을 쏟아내는 신자도 있고, 때로는 험담도 서슴지 않게 하기도 하고, 아주 더 심하게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버리고 떠나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고,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세례축일 미사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그리스도께 성령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사랑하시는 아들로 선포하셨으니,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본기도)
주님 세례 축일을 맞이하여,
우리를 위해 세례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나의 세례를 기억하고, 세례 때의 결심으로 돌아가서,
언제나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그런 하느님의 자녀들로 다시 태어납시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3,22)